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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라이프

대체 왜! 마스크를 안 쓰는 걸까? 코로나 민폐 속 심리

by 이번이 끝이다 2020.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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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됐다. 하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턱에 걸치거나, 아예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수도권 내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상승한 지금, 꼭 필요한 외출조차 조심스럽다. 밖에 나갈 때면 마스크를 꼭 챙겨 쓰고 손 세정제가 비치된 곳에서는 꼼꼼하게 손을 씻는다. 사람 많은 식당에는 가지 않고, 가더라도 재빨리 포장만 해서 나온다.

 

 

마스크 안 쓰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보이지?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벗고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아예 쓰지도 않는 사람이 종종 보여 마음이 거북하다. 그리고 친구 누구네는 이 거리두기 시절에 가족 외식을 한다고 하고, 지인 누구네는 오래 전 예약해둔 휴가 여행을 간다고 한다. 이쯤 되면 화가 난다. 아니, 나면 조심하면 뭐해? 남들은 안 지키는데. 왜들 신경 쓰지 않는 거지? 시민 의식은 어디로 간 거야?  

 

사회적 거리두기, 나는 잘 실천하는데 다른 사람은 왜 안 지키는 걸까? 한국 갤럽 조사 연구소의 8월 리포트에 따르면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잘 실천하고 있다”라고 한 응답자는 93%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잘 실천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52%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거리두기를 잘 실천하지 않는다”는 대답은 37%나 됐다.

 

자신이 잘 실천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밖에 되지 않았다. 즉, 자신과 타인의 평가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갤럽의 7월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행사/모임 참석을 자제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97%가 그렇다는 대답을 했지만, 실제로 야외활동 자제율은 대략 70~80%였기 때문에 자신의 사회적 거리두기 인식 평가에도 어느 정도 갭이 있었다. 

 

 

 

 

마스크를 못 쓴 피치못할 사정, 1%의 예외?

 

 

갤럽 조사에서는 자기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지만, 남은 하고 있지 않다는 인식 차이를 응답자의 자기 편향성에서 찾는다.  자신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이렇게 해석해볼 수 있다. 가령, 자기는 대체로 마스크를 잘 쓰고 있지만,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잠깐 잊었다.

 

마스크를 잃어버려서 약국까지 가는 도중이었다든가, 갑자기 숨이 막혀서 잠깐 내렸다거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는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사정이 있었으니까. 대체로 99%의 상황에 잘 지키고, 1%의 예외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이 그 1%의 상황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갤럽이 제시한 두 번째 설명은 정말 실천하지 않는 소수의 타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수의 타인 때문에 전체적으로 다른 사람을 다 뭉뚱그려 잘 실천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한다. 이 말은 또 이렇게 해석된다. 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는다. 아마 위의 조사에서 “나 자신도 잘 지키고 있지 않다”라고 대답한 2%의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너무 눈에 띈다. 그 똑같은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고 다수가 그를 목격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난동을 피우는 한 사람을 보고, 그 자리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은 역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잘 실천하지 않는다고 인식한다. 

 

 

 

 

과연 나는 남보다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일까?

 

 

혹은, 표본 조사의 성격에 따른 다른 설명도 있다.  정말로 실천을 잘하는 사람만 대답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설문에 응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잘했을 때만 대답하고, 그러지 않았을 때는 대답을 회피하는 경향도 있다. 분명, 우리가 길에서 본 무뢰한,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고, 흡연 구역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길에 침을 뱉고,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쓰라는 말을 들으면 눈을 부라리는 사람은 이런 설문 조사에 응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시민 의식이 낮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도 드물게 있지만, 그런 사람이 굳이 설문 조사에 참여할 확률도 높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다른 시민에게 위협이 되지 않고 사회 규칙을 잘 지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떳떳하게 말하는 법이다. 

 

나 자신은 남보다 잘하고 있다고 믿는 인식적 편향을 심리학적 용어로 “위비곤 호수 (Lake Wobegon) 효과”라고 한다.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가상의 지명에서 유래한 이 효과는 나는 평균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환상우월성”이라고도 한다. 운전할 때 보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다 운전 못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이런 환상우월성의 결과이다.

 

우리는 나 자신의 실수와 사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있고 핑계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설명을 해줄 만한 정보도 여유도 없다. 그리고 분명히 무언가를 실행할 때 평균 이하로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그 사람보다는 내가 낫다고 평가해도 완전히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사람은 자기가 나쁜 사람,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위험은 결국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틈' 속으로

 

 

이런 환상우월성의 자기 인식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는 양날의 검이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은 계속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유지하는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신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조심한다. 즉, 모임과 외출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챙기면서 사회 방역의 의무를 다하는 훌륭한 동료 시민이 되자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한편으로는 내가 느슨해지는 변명이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모임은 사회에 위험을 초래하는 반시민적 행동이지만, 나의 모임은 삶에서 최소한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남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을 보았을 때는 비난하지만, 나는 잠깐 답답하니까 식당 안에서는 벗을 수도 있지 않나 하며 스스로 틈을 주게 된다. 그리고 물론 바이러스의 위험은 그 틈을 파고들어 온다. 나와 내 가족에게 위협이 된다. 

 

내게도 사정이 있고, 타인에게도 사정이 있다. 지금은 모두 각자의 사정을 접어두고 사회 방역을 위해서 협조하는 시기이다. 답답한 건 모두가 마찬가지, 그렇지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종일 생활해야 하는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 자신은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하고 있지, 라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아직은 좀 더 잘할 여지가 남아있다. 그렇게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할 때 나는 보통의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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