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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가족의 행복여행
01. 아는 만큼 이해하고, 나누는 만큼 가벼워지는 병 치매
치매는 빠르면 50대 이후부터 뇌 기능이 손상되면서 이전에 비해 인지 기능이 지속적이고 전반적으로 저하되는 상태를 말한다. 원인은 다양하다.
흔히 '알츠하이머'라고 말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50%를 차지하며 혈관성 치매가 20 ~ 30%를 차지한다. 미국 전 대통령 레이건이 "나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라고 대국민 편지로 밝혀 더욱 심금을 울린 알츠하이머는 명명된 지 이제 갓 100년이 넘었을 뿐이다.
1907년 독일 정신과 의사 알츠하이머 박사가 최초 보고한 이래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확실한 발병기전이나 원인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치매라는 말은 'dementia'라는 라틴어에서 기인했다. 마음, 정신(mentia)을 잃는다(de)는 뜻인데 번역 과정에서 '어리석다'는 뜻으로 단순화되었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2013년부터 새로운 진단 체계를 도입하면서 '치매'라는 용어 대신 '신경인지장애'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치매'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부정적 뉘앙스를 없애는 것이 시작이라는 생각에서다.
영화 <스틸 앨리스>는 유능한 여교수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앨리스가 치매를 앓으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잔잔히 그려 호평을 받았다. 영화에서 앨리스는 처음에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점점 자신의 변화에 익숙해진다. 어둡기만 할 줄 알았던 치매에도 맑은 날이 있다는 것. 앨리스는 말한다.
'좋은날에는 일반인 연기가 되는데 나쁜 날엔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라고.
우리도 제대로 알아두자. 치매는 '노망'이 나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단지, 나의 어떤 부분들은 잃어가도 여전히 어떤 부분은 건재한 '신경인지장애'다.
02.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하지 마!
1. 치매는 낫지 않는 불치병이다?
흔히 치매라고 통칭하지만 '치매'를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그중 어떤 원인은 적절히 치료하면 치매 증상이 낫거나 개선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치매에 대한 오해 때문에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치료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치매의 10% 정도는 '낫는 치매'이니 치매 치료를 포기한 10명 중 1명은 귀한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는 셈.
2. 치매 환자들은 공격적인 언사와 분별없는 행동, 기억장애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물론 이런 상황이 드라마에만 나오는 건 아니다. 실제 환자들도 '주변 사람들에게 심한 욕을 하고' '썩은 음식을 준다고 밥상을 뒤엎고' '며느리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 단계에서 약물치료 등으로 잘 대처하면 치매 초기의 모습을 몇 년 동안 유지할 수 있다. 기억하자. 기억력을 잃는다고 반드시 인격이 망가지는 것은 아니다.
3. 고스톱은 치매 예방에 좋다?
할 일 없이 지내는 부모님에게 치매 예방으로 고스톱을 권유하는 것까지는 좋다. 특히 고스톱을 전혀 모르는 상태라면 효과가 꽤 있을 수 있다. 자기의 패를 확인하고 맞는 패를 찾는 과정에서 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미 고스톱에 익숙하고 자주 치는 부모님이라면 본능적이고 반사적으로 패를 내놓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패 선택부터 점수 계산까지 컴퓨터가 해주는 모바일 화투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4. 치매는 수개월 내에 상태가 악화된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나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은 치매에 걸린 지 수개월 만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다. 그러나 사실 그녀들이 걸린 '가족형 알츠하이머 치매'는 전체 치매의 1%밖에 안 되는 희귀 치매일 뿐, 실제 보통의 치매는 그렇게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되지 않는다.
5. 치매에 걸리면 결국 모든 기억을 잃는다?
아니다. 치매에 걸리면 뇌세포가 파괴되면서 기억을 차츰 잃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경우에 따라 치매 진단을 받고 5~10년이 지나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기억에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다.
6. 치매 치료약을 먹으면 바보가 된다?
치매 약을 먹으면 바보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게 된다는 오해 때문에 치매 약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치매 약 중 공격성이나 망상 장애를 억제하는 약물을, 의사의 처방보다 더 많이 먹을 경우 정신이 멍해지는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의 진단에 따라 적정량을 복용하면 부작용은 없다. 그러니 걱정 말고 약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
7. 치매에 걸리면 성욕이 감퇴된다?
오히려 뇌 상태가 변해 통제력과 자제력을 잃으면서 상당히 강한 성욕, 즉 '성욕 과잉(hypersexuality)'을 느낄 수 있다. 병이 악화되면 환자는 가끔씩 엉뚱한 사람에게 성적 관심을 보일 수 있으니 보호자는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신중히 헤쳐나가야 한다.
어느 날 장모님이 모처럼 전화를 주셨습니다. 기대와 달리 전화기 속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할머니가 집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네? 죄송하지만 노인정에 데려다 주시면 곧 모시러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황급히 달려갔지요. "김 서방, 나 아무래도 이상해. 요즘 자꾸 깜빡거려." 병원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치매 초기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어요.
장모님 성함은 장금순입니다.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랫말처럼 비록 치매 환자가 되었지만 금순 씨는 쭉 그래 왔듯이 혼자서 독거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도우미의 도움도 받고 아내가 자주 들러 혈압약과 치매약을 챙기면서 3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아내에게 찾아오지 않는다고 역정을 내시고, 만들어드린 반찬은 전혀 찾아 드시지 못하고 냉장고에 그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혈압약도 수북이 쌓여 있고 화분의 나무들은 말라 죽고 있었지요. 사랑하는 친손자도 몰라보고 도저히 혼자 생활하기 힘든 중기 치매로 변해 있었습니다.
다급히 집으로 모셨습니다. 처음 한동안 밤에 이상한 사람이 같이 가자고 해서 무서워 혼났다며 겁에 질린 모습을 하기도, 돈이 없어졌다며 동전을 세고 또 세며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날은 탈수로 입이 비틀어져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들어오시고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 가족의 사랑과 적극적인 치료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좋아져 동네 노인정에 다시 다니게 되었습니다. 고스톱을 치면 항상 돈을 따시고, 만두 만드는 법을 할머니들에게 훈수하기도 하시면서 잘 적응하였지요.
심지어 치매 판정을 위해 나온 의료보험공단 직원들에게 너무 똑똑하게 대답해 판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사람도 제대로 몰라보고 음식을 찾아 먹지도 못하고 헛것이 보이고 망상이나 섬망으로 가족을 힘들게 하던 중기 치매의 미운 치매 환자가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예쁜 치매로 호전되어 남들의 눈에 치매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되었지요.
비록 모자라지만 세상과 소통하면서 또 다른 모습으로 삶의 의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치매의 최고 약은 가족들의 사랑과 이해 그리고 눈높이를 맞춘 돌봄입니다. 어느 가정이나 치매 환자가 생기게 마련인 시대입니다.
이런 일에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가족회의를 자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가 할 수 있는 만큼 돕다 보면 가족이 화목해지고 치매 환자 또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02. 치매 가족과 대화하는 법
1. 칭찬하고 격려하자
치매 환자를 꾸짖으며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환자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만큼 위험하다. 특히 치료를 위한 ‘인지 훈련’ 과정에서 환자를 가르치다가 제대로 답을 못하는 환자에게 화를 내면 환자가 훈련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칭찬해주고, 격려해줘야 환자도 뿌듯함을 느끼고, 자존감을 갖는다. 그리고 자신을 보살펴주는 가족의 정을 느끼고 더욱 열심히 치료 과정에 임하게 되는 거다.
2. 시험하려 하지 마라
가족들은 치매 환자가 기억력이 떨어지면, 정말로 기억이 떨어졌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고, 힌트를 주고 정답을 말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치매 환자가 틀린 답을 반복하게 되면, 나중에 더 헛갈릴 수 있으므로 차라리 바로 정답을 말해주는 게 좋다. 이를 전문 용어로 ‘오류배제학습’이라 한다.
3. 천천히, 자세히 말하라
무언가를 알려줄 때도 10자 이내의 짧은 문장을 여러 번 차분하게 말하는 게 좋다. 그리고 사용하는 말도 환자가 잘 알아듣도록 쉬운 단어를 택한다.
예를 들어 "식사 후에는 양치질해야죠"가 아니라 "밥 먹은 다음 이를 닦아야죠"가 낫다.
03. 치매 가족과 행동하는 법
1. 치매 환자를 향해 최대한 많이, 그리고 자주 웃어라
언어적 기능이 많이 떨어진 치매 환자일수록 이런 비언어적 행동에 훨씬 더 민감하다. 환자들은 가족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족의 표정과 행동에 반응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하거나 밥을 먹일 때 환자 쪽을 향해서 가까이 시선을 맞추고 자주 웃어주는 것이 환자의 심리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2. 가벼운 스킨십을 늘려라
환자와 신체 접촉을 자주 하는 것도 환자를 안정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환자가 경계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인지 훈련을 잘했을 때 어깨를 가볍게 안아준다거나, 밥을 먹일 때 손을 잡으며 먹여준다든지 하는 정도의 스킨십이면 충분하다.
3. 환자의 '지금' 능력을 유지하라
잃어버린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하루 1~2시간씩 책을 베껴 쓰게 하면서, 정작 환자가 하고 싶어 하는 요리는 사고가 날까 봐 못하게 한다면 환자는 요리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환자가 스스로 요리할 수 있도록 하되 옆에서 도와주거나 함께 요리를 만드는 게 좋다. 과보호는 오히려 환자를 망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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